고양이를 그리다, 비워내다

Park Sungok

고양이를 그리다. 비워내다.

 

고양이를 인간과 구분하여 ‘애완 동물’로 간주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포스트 휴먼 담론을 위시한 최근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는 중이다. (중략) 이러한 관점에서 동물은 애완이 아닌 ‘반려’의 대상이다.[1]

Zen Mediation

 

There is a history where cats were considered “pets,” distinguishing them from humans. However, awareness of the coexistence of humans and animals is gradually spreading along with recent critical reflection on anthropocentrism, including post-human discourse. (…) From this perspective, animals are not pets but the subject of “companionship”.[1]

바라보기, 종이에 연필과 금분, 39x27cm, 2024

박성옥 작가는 알려진 바와 같이 고양이를 그린다. 왜 고양이일까? 박성옥 분석에 있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은 아마 이 물음일 것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에 대한 여러 글 중,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글은 수없이 반복되는 긋기를 통해 나온 디테일한 털묘사에 집중해, 그에게 있어 ‘그리기’란 곧 ‘수행’이란 작가론을 전개한다. 실제로 작가는 부산의 한 절에서 스님들을 도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배경 또한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작가는 “참선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참선은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한 수행이다. 참선은 여러 형태로도 가능하다. 얇은 선으로 종이를 빼곡하게 채워 가는 일이 나에게는 참선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런 언급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여지를 준다. 이렇듯 명백한 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성옥에 대한 이 글은 다른 지점, 그러니까 그림의 소재가 된 ‘고양이’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이유인 즉, 이러한 출발점이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기본에 충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글이 앞선 비평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로부터 시작하는 이 글 역시 선행 연구자들이 언급한 ‘그리기=수행’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Artist Sungok Park draws cats, as it is known. Why cats? It is probably essential to ask when analyzing Sungok Park’s work. Surprisingly, however, it isn’t easy to find text about the cat among the many articles about the artist. Most articles focus on the detailed depiction of fur made by countless repetitions of drawing lines and develop the artistic theory that “drawing” is a “Buddhist practice” for the artist. The artist lives by helping monks in a temple in Busan, and such a background of the artist also adds to this analysis. The artist said, “I like the term ‘Zen meditation,’ a practice to see through one’s nature. Zen meditation can be done in many ways. To me, filling the paper with thin lines is like Zen meditation.” Such a comment guides us to look at it in the same context. Despite this clear, logical argument, this article about Sungok Park tries to start from a different point: the “cat,” which is the subject of the artist’s work. It is because this starting point is faithful to the basics of analyzing the artist’s work. However, it doesn’t mean that the article contradicts the previous criticism. This is because this article, which starts with cats, also leads to the formula “drawing = Buddhist practice” mentioned by previous researchers.

박성옥에 대한 글에 고양이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고양이라는 존재를, 그것도 박성옥 작가가 그려내는 ‘귀여운 고양이’를 진지한 예술론에 결부시키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은 시대를 대변하는 여러 담론과 짝을 맞춰 나왔다. 세계대전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예술은 실존철학과 궤를 같이 하며 많은 작품들이 나왔다. 한국의 경우 해방과 동시에 한국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고, 이때 ‘한국적 추상’이나 ‘단색화’ 같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논의는 최근까지도 이어져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담론 안에서 다양한 실험들로 이어지고 있다. 예술과 예술론, 비평은 이렇듯 그 ‘격’에 맞게 작성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은 글쓴이들로 하여금 ‘고양이’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됐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귀여운 고양이’보다는 ‘수행’이 박성옥을 예술가로 명명 짓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란 존재가 과연 그 격에 맞지 않는 존재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리는 고양이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는 집안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일명 ‘집사’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고양이를 기르든 말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산책하며 마주치는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마주치는 수많은 고양이 이미지들을 떠올려보자. 이렇듯 당신은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방송이나 뉴스, 잡지는 물론 영화나 시, 소설 등에서 고양이를 진지하게 담아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고, 급기야 최근에는 ‘생물학’이나 ‘동물행동학’이 아닌 ‘철학’ 분과에서도 고양이를 다루며 다양한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The reason cats are not mentioned in the articles about Sungok Park may be because of the artist’s background, but it is not necessarily just because of that. It is because there are some burdensome parts to link the existence of a cat, especially the ‘cute cat’ drawn by Sungok Park, to a serious art theory. As is generally known, art has been in pairs with various discourses representing the times. When countless people died due to the World War, art came out in line with existential philosophy. In the case of Korea, as soon as it was liberated, they seriously considered what Korea was, and works such as “Korean Abstract” and “Monochrome painting” were born at this time. Such discussion has continued until recently, leading to various experiments within the discourse of “post-colonialism.” Art, art theory, and criticism must have hindered the writers from analyzing “cats” due to the pressure that they must talk about serious theory, which is considered a certain class of form. It is because, no matter how hard you think, it is easier to title Sungok Park as an artist by her “practice” than by “cute cat.” However, is a cat really not enough for that? If you think about it carefully, it is not the case. In fact, we live life with cats. It does not apply only to the so-called ‘butlers at a cat’s house’ living with cats in their homes. Whether you have a cat in your house or not, you, who are reading this article right now, live with them. Think of the many street cats you meet while taking a walk. Think of the many images of cats you see through algorithms. As such, you live with the cats even if you don’t want to. As a result, various attempts are being made to capture the images of cats in broadcasts, news, and magazines, as well as movies, poems, and novels. Various studies dealing with cats have recently been published in the “philosophy” division, not ‘biology’ or “animal behavior.”

같은곳을 향해, 종이에 연필과 금분, 39x27cm, 2024년

이렇듯 고양이의 위상이 달라진 이유는 단지 우리가 고양이와 삶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양이에 관한 이러한 접근은 최근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류세’, ‘탈인간중심주의’ 논의와 맞닿아 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인류라는 지구 전체를 바꾸어 놓는 단일 생명의 강력한 영향력을 의미한다.”[2] 풀어 설명하자면, 지구는 빙하기의 도래나 대륙의 분리 등 지질학적으로 여러 번의 큰 변화가 있어왔는데, 대부분이 자연재해가 요인이었던 반면, 지금은 인간의 행위에 따라서 지구의 생태계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기에, 이 시기를 인류세라고 부르자는 제안이다. 이러한 인류세 논의는 지구가 처한 환경위기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논의는 자연스럽게 지구의 주인이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식물에게도 있다는 ‘탈인간중심주의’로 나아간다. 인류세는 아직 정식으로 자리잡힌 지질학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상당해서 많은 동의를 이끌어내며 다양한 학문분과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인문사회분과와 예술분과에서의 성과는 주목할 만한데, 여성주의, 그중에서도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과 결합하며 눈에 띄는 성과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이론가로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를 들 수 있다. 그는 인간과 관련된 동물들은 인간과의 공진화 과정 속에서 각각 행위주체로서 상호 영향을 미치고, 또한 이들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을 배양함으로써 친족(kin)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존에 사람과 동물을 구분짓는 ‘종’ 개념을 철폐하고 ‘반려-종(companion species)’ 개념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3] 그는 인간만의 사회에 동식물 등 자연을 합쳐 새로운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4]

As such, the reason why the status of cats has changed this way is not just because we share life with them. Such an approach to cats is in line with the discussion of the “Anthropocene” and the post-humanism, which have recently been mentioned importantly. “Anthropocene is a concept first proposed by Dutch meteorologist and atmospheric chemist Paul Crutzen, which refers to the powerful influence of a single life that changes the entire planet of humanity.”[2] In other words, the Earth has undergone several major geological changes, including the advent of the Ice Age and the separation of continents, with most natural disasters being a factor. Still, the Earth’s ecosystem is rapidly changing according to human behavior, and Crutzen proposes to call this period the Anthropocene. Such discussion of the Anthropocene can be seen as a human response to the environmental crisis the Earth is facing. Therefore, this discussion naturally moves toward the ‘post-humanism’ that the owner of the Earth is not only human but also other animals and plants. The Anthropocene has yet to be a formal geological concept. However, its impact is significant, drawing a lot of consent and being dealt with in various fields. In particular, the achievements in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and the arts fields are noteworthy, and they are showing remarkable achievements in combination with feminism, especially eco-feminism. A representative theorist is Donna J. Haraway. She believes that animals related to humans can become kin by mutually influencing each other as actors in the process of coevolution with humans and also cultivating thoughts and imaginations about them. For this reason, she suggests abolishing the existing concept of ‘species’ that distinguishes people from animals and establishing the concept of ‘companion species.’[3]She argues that a new symbiosis network should be created by combining nature, such as animals and plants, into human society.[4]

비밀이야기, 종이에 연필과 금분, 39x27cm, 2024

다시 박성옥으로 돌아가자. 박성옥은 고양이를 그린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인간과는 다른 어떤 종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과 고양이는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더 긴밀한 관계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작품 <자화상>(2023)과 <투영>(2022)을 보자. 이 작품들 속에서 소녀와 고양이는 마치 하나의 존재인양 그려진다. 소녀와 고양이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교감을 나누는 <5월의 친구들>(2023)과 <함께하는 소녀들>(2023)도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림 속 의인화된 고양이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마치 고양이가 소녀를 안마해주는 듯한 모습을 묘사한 <꾹꾹꾹>(2023)과 날고 싶어하는 고양이를 위해 두 손으로 떠받쳐주는 소녀를 그린 <날고 싶은 너, 구름이 되어주는 나>(2023)는 서로를 위하는, 말 그대로 ‘반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류의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그가 집과 절에서 함께 반려자로서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절에서 일한다는 다소 특수한 환경 때문에 사람과의 교류가 적고, 고양이와의 시간이 많아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고양이와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절에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해탈이’가 비둘기나 쥐를 물어 죽여 스님들을 크게 당황시켰고, 말이 통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고양이를 교육시켜야 했던 일화를 말한 적 있다. 이는 절의 규율을 인간이 아닌 고양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적용시킨 사례 중 하나로 인간-동물을 구분하지 않는 작가 주변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박성옥 안에서 인간과 고양이 사이의 위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고양이를 묘사하는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고양이를 잘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실패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필자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는데, 미술에 있어 어쩌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질문을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자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고양이를 잘 그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디테일한 털의 묘사 외에도 고양이의 유연한 움직임, 다양한 표정, 더 나아가 그들의 생태 등 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표현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세상에 많은 고양이 이미지들 사이에서 박성옥 작가의 고양이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이지 않을까? 고양이를 친족으로 대하며 대상화시키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Let’s go back to Sungok Park. Sungok Park draws the cats. However, all the cats the artist draws do not feel like they are any species different from humans. In her work, humans and cats are drawn more closely than any other human relationship. For example, let’s look at the works “Self-Portrait” (2023) and “Projection” (2022). These works describe a girl and a cat as one being. “Friends in May” (2023) and “Girls Together” (2023), in which a girl and a cat communicate with each other in equal relationships, evoke the same idea. The anthropomorphic cats in the painting can be seen in the same context, as can be seen in “Kukkukkuk” (2023), which depicts an image that looks like a cat massaging a girl, and “You Who Wants to Fly, Me Becoming a Cloud” (2023), which depicts a girl supporting a cat with both hands for it which wants to fly, show the appearance of caring for each other, literally meaning the “companionship.” This kind of artwork can be done because the artist lives with her cats at home and the temple as companions. Also, it is possible because of the rather unique environment of working at a temple, the artist interacts with fewer people and spends more time with the cats. The artist once told an episode in which a cat lived with her in a temple, Haetal, made it awkward by killing pigeons or mice, and she had to educate the cat even though she couldn’t communicate with it. This is one of the examples of naturally applying the temple’s rules to a cat, non-human, and it suggests the environment around the artist who does not distinguish between humans and animals. It is also a case of how humans and cats make some kind of contract to live in a community. There is no hierarchy between humans and cats to Sungok Park. The way the artist describes the cats is also noteworthy. The artist said in a conversation, “I failed countless times until I could draw the cat right.” This statement came to me somewhat unfamiliar, as they do not often ask this question in the contemporary art field, which may be the most basic of art. To the artist, drawing a cat well is an expression that encompasses everything, such as the flexible movement of the cat, various facial expressions, and even their ecology, in addition to the detailed description of the fur that many people pay attention to. This may be why Sungok Park’s cat looks particularly prominent among many cat images worldwide. It is the point that the artist treats cats as relatives and does not objectify them.

아시다시피 박성옥은 비단 고양이만을 그리진 않는다. 작가의 미술계 데뷔라 할 수 있는 카페 ‘AT GALLERY’에서의 전시 ≪위로≫(2009)는 색색의 꽃과 소녀를 담고 있었으며, 이후 소설가와의 협업 작품인 ≪INVISIBLE LITTLE MONSTER≫(2014)를 통해서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괴물들을 화면에 담아냈다. 이후 제작된 시리즈들 역시 초현실적 배경 뒤에 ‘동심을 잃지 않고 성장한 소녀’를 다루며 고양이를 그리지 않았다. 간혹 그림 속에 고양이가 등장한다 셈 치더라도 주변부에 머물 뿐이었다. 그리고 이때는 ‘고양이’보다는 ‘뱀’이 화면에 더 자주 등장했다. 지금과 같이 고양이를 전면에 다루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긋기를 통한 털묘사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작가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 과정이 비워내는 과정 속에 나왔다고 믿는다. 작가는 이 시기에 “그림 그릴 때 생각을 담기보다, 오히려 비워내고 무(無)를 향해서 가는 느낌이다. 왜 애를 써서 무를 향해 가는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확실한 건 그림을 그릴 때는 잡생각이 없어지고 개운해진다”[5]고 적었다. 장식적인 화면을 지워내며, 수행하듯 반복적으로 선을 그리며 대상에 집중하는 일, 그리려는 대상을 멀리서 찾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찾아내는 일 모두 ‘비워내는 일’이였을 테니 말이다. 최근 작가는 이전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큰 캔버스 위에 고양이를 거대하게 그려 빼곡하게 검은 선으로 채우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작품은 커졌지만, 내용은 줄어들었다. 이 역시 비워내는 일의 연장선이라 여겨진다.

 

As known, Sungok Park doesn’t only draw cats. The exhibition “Comfort” (2009) held in the cafe “AT GALLERY,” which was the artist’s debut in the art world, contained colorful flowers and a girl, and later captured invisible monsters intervening in human life on the canvas through the “INVISIBLE LITTLE MONSTER” (2014). The series produced later also described a “girl who grew up without losing her heart” behind the surreal background and did not draw the cats. Sometimes, a cat appeared in the painting but only stayed in the background. Back then, “snakes” appeared more often than the “cats” on her screen. It was relatively recently that the cat began to be brought to the foreground as it is now. At that time, the fur depiction through countless repetitive line drawings began. Many assumptions about the artist’s change can be made, but I believe this process came out while emptying out. During this period, the artist said, “I feel like I am emptying out toward nothingness rather than putting in my thoughts when I paint. I sometimes get confused about why I try so hard to go for nothingness, but what is certain is that when I paint, I lose all my meaningless thoughts and feel refreshed.”[5] Focusing on the object, repetitively drawing as if meditating and erasing decorative screens, finding objects to draw around her rather than looking for them from afar, it would all have been “emptying out.” Unlike previous small drawings, the artist releases works that fill large canvases by drawing huge cats with tightly drawn black lines. The work has grown bigger, but the contents have been simplified. It can also be considered an extension of emptying out.

박성옥은 스스로 작가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며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겸손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대화를 해보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 또한 작가와 닮아 있음을 알았다. 잘 그리는 것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처럼 작가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또한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박성옥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사진을 전공했다. 미술계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왔으니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지도 모른다. 또한 작가는 본인의 말로 인류세 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어쩌면 이 이슈를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생태계가 변질되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꿀벌’ 이 그의 화면 안에서 고양이와 함께 담기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 그렸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한껏 무게 잡고 어떤 주장을 할 법도 싶은데, 작가는 그러지 않는다. 이런 삶의 태도 때문일까? 그는 고양이를 대상화시키지 않듯이 예술도, 인류세 논의도 대상화시키지 않는다. 그저 소박하게 작은 실천들을 하나하나 해가며 작품을, 아니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무릇 작품은 작가를 닮기 마련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작가도 보곤 한다. 하지만 박성옥은 닮았다. 작가와 작품이 아주 긴밀하게 서로 닮아 있다.

Sungok Park is shy about calling herself an artist and says she is in the process of becoming an artist. She may be saying this out of modesty, but after talking with her, I realized that she was actually thinking that way and that it also resembles the artist. It is because, like the question of how to draw well, it is natural for an artist to question what an artist is. Sungok Park majored in photography, not in painting. Now that she has come from outside the fine arts field, she may ask more essential questions. In addition, the artist does not talk about the Anthropocene in her own words. I did not ask, but maybe she is unaware of this issue. The “honeybee,” which is disappearing around us due to the deterioration of the ecosystem, appears with a cat on her screen, but she doesn’t mention that she drew it for it. She could try to be cool and make some arguments, but the artist does not. Is it because of this attitude of life? She does not objectify art or discussion of the Anthropocene, just like she does not objectify cats. She simply works on artwork or lives her life, doing small practices one by one. Any work is bound to resemble an artist. However, sometimes I see artists who do not. Sungok Park, however, resembles her work. The artist and the work closely resemble each other.

꾹꾹꾹, 78 x 78 cm, Pencil and gold powder on paper, 2023

[참고 도판]

[1]백승한, 「동물의 이미지: 타자의 마음, 객체, 그리고 표상으로서의 고양이 읽기」, 『현대미술사연구』 제53집, 현대미술사연구회, 2023, p.178

[2] 심효원, 「인류세와 21세기 간학제적 접근론」, 『비교문학』 제80집, 한국비교문학회 2023, p.238

[3] 현남숙, 「D. 해러웨이의 다종적 생태정치: ‘함께-되기’와 ‘응답-능력’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제35권, 한국여성철학회, 2021, p. 89 참고

[4] 이 지점에서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최근 연세대학교는 ‘뉴-노멀’ 시대를 맞아 새로운 사회관계망에 관해 연구하며 발표한 논문 「포스트 휴먼 사회관계망 연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드러난 인간-고양이 마을의 SF만들기」(2023)은 특히 주목할만 하다. 이 논문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아파트와 그 안에서 함께 살았던 인간-고양이의 관계에 대해서 논한다.

[5] 작가노트 중, 2021

 

이보성 (미술이론)

[1] Seunghan Paek, 「Images of Animals: Reading Cat as Other Minds, Object and Representation」, 『 Journal of History of Modern Art』 20223, Vol., No. 53, Korea Association for History of Modern Art, 2023, p.178

[2] Hyowon Shim, 「Anthropocene and 21st Century Interdisciplinary Approaches」, 『Comparative Literature 』2023, Vol., No. 80, The Korea Comparative Literature Association, p.238

[3]Nam Sook Hyun, 「Donna Haraway’s Multispecies Ecopolitics: Focused on ‘Becoming-with’ and ‘Response-ability’」, 『 Korean Feminist Philosophy 』 2021, vol.35, Korean Association Of Feminist Philosophers, p. 89

[4] Many journals are being published on this, and Yonsei University’s recent study on new social networks in the era of “New-Normal,” “Exploring the Uniqueness of Posthuman Social Networks: Making SF of Human-Cat Village Revealed in the Movie “Cats’ Apartment” (2023)”, is particularly noteworthy. This writing discuss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partment that will be demolished due to redevelopment and the human-cat that lived together in it.

[5] From the artist note, 2021

Lee Boseong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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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

학력

2006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학사 졸업, 부산, 한국

 

주요 개인초대전

2023 온기, OKNP, 부산, 한국
2021 ‘호냥이, 비온후책방 전시공간보다’, 부산, 한국
‘무해한 친구들’, 자인제노갤러리, 서울, 한국
2020 ‘미묘하여’, 비온후책방 전시공간 보다, 부산, 한국
2019 ’33GIRLS’, 자인제노갤러리, 서울, 한국 외 다수

 

EDUCATIONS

2006 B.F.A Photography,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23 Warmth, OKNP, Busan, Korea
2021 ‘Tiger Cat’, Beonwho bookshop Gallery space Boda, Busan, Korea
‘Harmless Friends’, Gallery ZEINXENO, Seoul, Korea
2020 ‘微猫’, Beonwho bookshop Gallery space Boda, Korea
2019 ’33GIRLS’, Gallery ZEINXENO, Seoul, Korea,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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