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즉(相卽)_해석된 풍경
황혜선오케이앤피는 12월 12일(목)부터 1월 5일(일)까지 황혜선의 개인전 <상즉(相卽)_해석된 풍경>을 개최한다. 황혜선(1969~)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에서 석사(뉴욕대학교)를 마치고 귀국해 조각을 중점에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는 정주(定住) 하지 않고 계속 실험하며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는데, 이번 전시에도 그의 대표작인 ‘드로잉 조각(drawing sculpture)’부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하게 확장되고 변주된 신작들을 대거 발표한다.
황혜선은 마치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연필로 드로잉을 한 것과 같이, 전시장 벽면에 검은색으로 도장된 얇은 선의 스테인리스로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드로잉 조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이 시리즈로 작가는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많은 전시를 가졌으며, 더 나아가 공공미술까지 확대해왔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비교적 최근인 2010년대에 발표되었고, 이후에도 다른 시리즈들을 발표해왔기에 ‘드로잉 조각’하는 작가라고만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다. 황혜선은 초기에 ‘소통’을 주제로 실리콘으로 만든 귀마개 조각 <Unplugged>(1995)와 풍선껌으로 만든 귀 조각 <His Ear>(1995)를 발표했으며, 이후 리본 테이프에 평론가의 글을 금(金)실로 자수를 넣은 < >(1997), 지우개 찌꺼기로 제작한 <드로잉>(1999) 등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속이 꽉 찬 양동이 조각 <너무나 믿기 때문에 채울 수도 덜어낼 수도 없는>(2006)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으며, 유리에 에칭, 크리스털에 에칭, 유리에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조형실험을 하며 정주하지 않는 작가로 그 입지를 단단히 했다. 작가는 “저는 개념 미술을 하는 작가, 공간을 변형하는 설치미술가, 조각을 하는 조각가, 다양한 형태의 미술을 하는 작가로 기억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저 자신을 머무르지 않는 작가라 불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도 황혜선은 새로운 시도를 한다. 작가를 명명 짓는 ‘드로잉 조각’에서 벗어나 그것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말이다. 기존의 ‘드로잉 조각’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 그 흔적만 남은 것처럼 제작된 <사라지는 조각>(2024)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정원 개념인 ‘차경(借景)’을 예술로 펼쳐내 보이기도 한다. 21세기 조각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장소-특정성(site-specific)’인데, 작가는 이를 작가만의 어법으로 차용해 ‘차경’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를 두고 홍익대학교 정연심 교수는 “(황혜선에게 있어) 장소특정성이라는 것이 특정 장소에만 작품이 놓이는 고정된 장소성을 의미하지 않고,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특정적인 성향이나 비가시적인 요소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물질적 상상력을 오히려 조각의 언어로 변용시켜 형상화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업은 서구의 포스트(미니멀리스트)들이 천착했던 특정 장소의 역사성이나 정체성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 미술가로서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가시적인 조각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이를 조형적으로 변용시킨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시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바다를 작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를 1차원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바다의 바람, 소리, 빛, 흐르는 시간 등으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상즉(相卽)_해석된 풍경’이다. 동양철학에서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의 상즉은 작가에게 있어 ‘서로 대립되는 것 또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으로 해석된다. 즉 빛은 그림자와, 가벼움은 무거움과, 물성은 비물성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삶과 빗대어 생각하면 내가 너와 다르지 않음을, 우리가 너희와 다르지 않고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전달한다. 이처럼 황혜선은 ‘조각의 경계’ 등 무거운 담론을 다루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은유적이고 따뜻하다. 전시를 감상하며 작가가 준비한 여러 이야기들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더불어 서로가 서로와 마주하고 있음을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있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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