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미술을 위한 제언
한영욱오케이앤피는 오는 10월 24일(목)부터 11월 24일(일)까지 한영욱 작가의 개인전 <재현 미술을 위한 제언>을 개최한다. 한영욱(1963~)은 홍익대학교 서양화 학석사를 마치고, 국내 주요 미술관 및 해외 주요 기관에서 전시를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는 작가이다. 한영욱은 정밀한 묘사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면면을 들여다보면 극사실주의 작가로만 일컫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데, 이번 전시 <재현 미술을 위한 제언>은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 보며 사실적인 묘사 너머의 철학을 들여다보고자 기획되었다.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인류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고대 사람들은 벽에 동물을 그리고 그 그림에 창 등을 던져 사냥의 성공을 빌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렇게 미술은 처음에는 주술적인 의미와 함께 인류사에 등장하였다. 이후 미술은 투시법 및 명암법 등이 개발되며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주술적인 의미와 더불어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기능까지 더해져 그 입지를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사진의 발명과 함께 미술은 무엇인가를 재현한다는 고유한 지위를 고스란히 사진에 넘겨주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재현이 아닌 ‘표현’ 등 다른 방식을 모색되게 되었다. 폴란드의 미학자 타타르키비츠는 그의 저서 『미학의 여섯 가지 개념』에서 “20세기가 넘도록 계속된 재현이 종료되었다”고 적으며 “미술 대이론의 종말”이라 일컬었다. 이후 미술은 추상을 거쳐 현재는 다양한 실험의 각축장이 되었다. 21세기 초 극사실주의가 유행하면서 다시 재현 미술이 미술계에 등장한 바가 있지만, 이 역시 금세 사라지며 현재, 재현 미술은 철 지난 양식으로만 인지되고 있다.
한영욱은 이런 미술계 상황에 ‘재현’을 정면으로 들고 나와 맞서는 작가이다. 그는 “이 시점에서 재현 미술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재현 미술은 미술로서의 독자적 영역을 본격적으로 모색하지도 못하고 모던 미술로부터 배척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재현 미술이란 형식이 20세기가 넘게 연구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대로 된 연구가 아니었다고 작가가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미학, 미술이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에게 작가의 이 말은 다소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데, 이유인 즉 미술이 현재의 독립적인 지위를 갖게 된 이후에 재현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그 존재 의미를 제대로 모색되지 않았음을 꼬집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데로 재현 양식은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다시 모색되어야 하는 ‘미래의 양식’일지도 모른다. 최근 영미권을 중심으로 ‘이미지올로기’ 학제 연구가 가속을 밟고 있는데, 이런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영욱은 재현 양식을 갖고서 유독 인물을 많이 그린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어디선가 봤을 법한 인물이지만,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가 이미지를 모으고 조합하여 만든 새로운 인물이다. 헝가리의 미학자 루카치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일종의 ‘전형’을 그리는 것인데, 이 전형을 통해 한 인간의 개별성을 살림과 동시에 보편성을 지향해 우리 심연에 있는 무엇인가를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인물들을 단순히 사실적으로 잘 그리는 것에서 그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캔버스를 그의 화폭으로 활용하지 않고 알루미늄판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 위에 온몸으로 긁어내고 파는 그만의 독특한 표현이 가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표현이 가미된 그의 회화는 일반적인 그림들과 달리 빛이 부딪히고 반사되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는 한영욱의 인물 그림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그림들을 한 번에 모아 선보이는 자리이다. 이전의 그의 전시들은 타이틀이 ‘FACE’였던 적이 많은데, 이번 전시는 ‘재현 미술을 위한 제언’이란 전시제목을 갖고 있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그간 발표해왔던 인물은 물론, 동물, 군상, 풍경 등 재현이라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감상하며 동시대 미술에서의 재현 미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 바라며,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모습과 그 실존의 깊이도 함께 감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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