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window opens, and the wind comes in
Lee Chae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은 실제로든 상징적으로든 어떤 여정을 떠나곤 한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령 중 하나는 주인공에게 여정의 목표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는 일상에서 어떤 균열을 깨닫고 목표에 도달하거나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이야기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흥미로운 서사에서 주인공은 목표했던 것이 아닌 의외의 결말에 도착한다. 그럼에도 여정은 실패가 아니다. 그는 원래 설정한 목표를 이루려는 여정 중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목표를 재설정하여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처음에 쏘려고 했던 과녁을 빗나가서 마침내 다른 과녁에 정확히 명중할 때 오히려 아름다운 서사가 탄생한다. 정반합을 통해 과정을 풍성하게 겪으며 진정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성공의 여정이다.
작가가 작업을 해 나가는 여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면 어떨까. 지금 손에 쥔 하나의 작품 안에서 완결성을 찾는 것이 목표일 수도, 아직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가 목적지일 수도 있다. 이채 작가는 후자에 가깝다. 작업이라는 기나긴 여행을 하는 동안 남겨진 흔적들이 그림이 되고 조각이 되는 것이다. 그가 주제로 삼는 푸른 꽃은 실제의 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상징하는 관념적인 꽃이다. 내면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 예술적 세계의 완성에 대한 욕망과 동경일 수도 있겠다. 그가 시작한 서사의 목표는 푸른 꽃을 찾는 것. 언제 완결될지 모를 긴 여정이다.
The protagonists in novels or movies go on a journey, whether it is actual or symbolic. One of the tricks of constructing a story is to instill in the protagonist the goal of the journey. They encounter certain troubles in daily life and engage in a compelling struggle within the story to reach their goal or destination.
However, in most interesting narratives, the protagonist arrives at an unexpected end rather than what was aimed at. Still, the journey is not a failure. On the journey to achieve the initial goal, they discover their true inner self, eventually reset the goal, and begin a new journey. This way, when they miss the target that they were initially aiming for and finally hit another target right in the middle, a beautiful narrative is born. It is a journey of success to reach the true destination while going through the process in abundance through thesis-antithesis-synthesis.
What if the artist’s journey to work is viewed as one story. The goal may be to find completeness within the one work in hand now, or a world that is not yet visible may be the destination. Artist Lee Chae is more like the latter. The traces left after the long journey of work become paintings and sculptures. The blue flower Lee takes as the theme is not an actual flower but an ideological one that symbolizes the artist’s inner self. It may be the ideal to reach from the inside or the desire and admiration for the completion of the artistic world. The narrative goal of what the artist started is to find the blue flower, a long journey that you do not know when it will be accomplished.
The Blue Flower-Wind, Oil on Canvas, 145.5x112cm, 2024
스스로 생동하는 사유의 흔적들
여행자가 반복해서 발걸음을 옮기듯, 작가는 화면 위에 물감을 올리고 닦아내길 반복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몰입을 통해 마음의 결을 되살리는 일이다. 이미 칠한 물감을 다시 닦아내는 것은 있었던 행위를 지우고 다시 과거로 돌리는 일처럼 보인다. 일견 무용해 보이는 행위지만 캔버스 위에 남은 흔적은 그것이 거기 존재했음을 증명해준다. 양립 불가능한 행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들어낸 사유의 자리다.
서로 다른 요소의 모순과 충돌을 허용하면 무한히 변화의 여지가 생긴다. 성공적으로 균형을 유지한다면 표면적으로 안정된 모습이 드러나지만, 처음부터 경직된 상태와는 본질이 다르다.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안정의 상태다. 이채 작가의 화면은 내면에서 거듭 꽃을 피워내는 과정에서 남겨진 사유의 흔적, 긴 여정 중에 이루어낸 균형의 이미지다.
그의 초기작이 과정을 중시하며 내면의 꽃을 피워내는 데에 집중했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그 꽃을 관객 앞에 조금 더 이미지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몰두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식물들의 곡선감 있는 형태를 빌려 화면 위에 심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작업이라는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내면의 꽃은 마음속에서도 화면 위에서도 계속 자라났다. 어느새 그의 마음은 더 단단해졌고, 여린 꽃은 지난 전시 <나무가 되어>에서 목질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The traces of thinking that acts on its own
Just as a traveler repeatedly puts one step after another, the artist puts paint on the screen and wipes it out again and again. According to the artist, it is to revive the texture of the mind through immersion. Wiping off the paint that has already been painted seems like undoing an action and returning to the past. It seems useless at first, but the traces left on the canvas prove it has existed there. It is the place of thought created by conflicting actions.
Allowing contradictions and conflicts between different elements creates room for unlimited change. If the balance is successfully maintained, it will reveal a stable appearance on the surface, but it is different in essence from the rigid state from the beginning. It is a lively state of stability that can move at any time. Artist Lee Chae’s screen is an image of the traces of thinking that remained after repeatedly blooming from the inside and the balance achieved during a long journey.
While Lee Chae’s early works put more weight on the process, focusing on blooming the flower inside, recent works are devoted to revealing the flower to the audience more visually. It expresses the image on the screen, adopting the curved shape of plants found in everyday life. During the working journey, the flower of the inner self continued to grow both in the mind and on the screen. The artist’s mind finally became stronger, and the tender flower appeared in a lignified form in the previous exhibition, “Lignification.”
The Blue Flower-Wind, Oil on Canvas, 112x112cm, 2024
나무는 처음에는 위로 곧게 자라며 단단해진다. 제 자리를 튼실하게 잡는 과정이다. 그러나 나무는 위로만 자랄 수 없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넓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서 나란히 선 다른 나무들과 몸이 겹쳐진다. 서로 꽃가루를 주고받고, 햇볕을 가리거나 바람을 막아 주기도 하면서 주변과 유연하게 관계 맺는다. 한 포기의 꽃, 한 그루의 나무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품으며 하나의 풍경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림 속에서도 꽃과 나무가 자란다.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 맺는 과정에서는 역시나 모순과 충돌이 일어난다. 곡선과 직선, 수직과 수평, 상승과 하강, 넓고 좁음 등 양립 불가능한 요소가 다양한 리듬감을 보여주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춘다. 다름에서 불거지는 긴장감은 다가올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이 또한 작가의 내면에서 비롯된 생기일 테다.
이제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분다. 매일 보는 식물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 바라보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어느 뜨거운 여름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면 그제야 깨닫는다. 겨울을 웅크리고 버틴 나무가 봄과 여름 동안 무성한 잎을 키워냈다는 것을. 비로소 여름의 한 가운데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바람이 불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성장은 매일 반복하는 행위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변화가 모여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깨닫는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이채 작가의 화면 속에 바람이 불며 아른거리는 나무의 그림자가 드러난다. 푸른색의 농담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잎의 속삭임이 들린다. 사유의 흔적이 모여 스스로 생동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작가의 내면에서 벌어진 사건의 흔적이라 할지라도, 화면 안에서부터는 이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특히 최근 작품들은 각각의 요소들이 더욱 긴밀하게 관여하며 리듬을 생성한다. 작가가 만들었지만 스스로 생명력을 획득한 식물들이 서로 맞대고 기대며 새로운 갈래의 이야기를 뻗어내는 것이다. 화면 속의 질서와 균형을 재편하는 사이에 무한한 서사의 가능성이 열린다.
Trees grow straight upward at the beginning and become stable. It is the process of firmly establishing their position. However, trees cannot only grow upward. They must go through the process of spreading branches in all directions and expanding them. As branches and leaves become lush, the body overlaps with other trees that stand side by side. They exchange pollen, block the sun or the wind for each other, and build flexible relationships with their surroundings. It is the process of forming a landscape by embracing a wider world, away from a flower or a tree.
Flowers and trees also grow in the painting. Contradictions and collisions also happen in the relationships of different beings. Incompatible elements such as curve and straight line, vertical and horizontal, rising and falling, and wide and narrow show various rhythms and are narrowly balanced. The tension that rises from the difference implies the possibility of change to come and brings life to the screen. This also must be a vitality that stems from the artist’s inner self.
Now, the wind is blowing through the trees. The plants we see every day don’t look so different. It is because we overlook them. However, when the leaves are shaken by the wind on a hot summer day, we finally realize that the trees that have curled up and survived through the winter grew lush leaves during the spring and summer and that we have entered the middle of summer. We only know it once the wind blows. Growth comes together with repeated actions we take every day and small, unnoticeable changes, but the moment we realize it comes unexpectedly.
In the screen of the artist Lee Chae, the shadow of the wavering tree by the wind appears. Whispers of leaves rustling through blue light and shadow are heard. It is the scene where traces of thinking gather and live. Even if it is the trace of an event that happened inner self of the artist, another event now occurs from within the screen. Especially in recent works, each element is more closely involved, which creates a rhythm. Plants created by the artist but have acquired vitality by themselves lean on each other and extend a new branch of the story. While reorganizing the order and balance inside the screen, the possibility of an infinite narrative opens.
The Blue Flower-Wind, Oil on Canvas, 112x112cm, 2024
과정 속의 목적지
파랑새의 서사를 닮은 영화 <버터플라이>(2002)에서, 나비수집가 줄리앙과 꼬마 소녀 엘자가 환상의 나비 ‘이자벨’을 찾아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 일주일간 나비를 찾아 헤맸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그들은 집에서 ‘이자벨’을 찾는다. 실제 나비도, 그리고 엘자의 엄마 이자벨의 사랑도 제자리에 있었다. 환상과 일상은 동등하게 경이로웠다. 멀리 돌아온 여정이 있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진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외부 세계와 만나 변화를 맞고 성장한다. 성장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패턴을 깨고 나와 외부와 부딪혀야 한다. 그리하여 이채 작가는 이미지의 창을 열고 바람을 맞아들인다. 창을 연다는 것은 외부 세계로 통하는 길을 튼다는 것이다. 바람을 맞은 식물들이 더욱 생기 있게 움직이며 존재를 드러낸다. 서로의 몸을 스치며 또 다른 변화를 암시한다. 창을 열고 멀리 바라보자, 이내 그가 여행 중인 거대한 숲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 펼쳐질 테다.
Destination within the process
In the movie “Butterfly (2002)”, which resembles the narrative of “The Bluebird,” Julien, who collects butterflies, and a little girl named Elsa go on a trip to the forest in search of a fantasy butterfly “Isabelle.” After searching for the butterfly for a week, they return empty-handed and find “Isabelle” at home. The actual butterfly and the love of Elsa’s mother, Isabelle, were all in place. Fantasy and daily life were equally phenomenal. It was the truth that was realized by the journey after a long detour.
The protagonist of a story always meets the outside world and faces changes to grow. They have to break their own pattern and come out to face the outside to meet the moment of growth. Therefore, artist Lee Chae opens the window of the image and embraces the wind. Opening the window implies opening the path to the outside world. Plants facing the wind move more vividly and show their existence. They brush each other’s bodies and imply another change. Let’s open the window and look further. Soon, they will realize that there is a vast forest in which they are traveling. An endless journey will unfold.
The Blue Flower-Wind, Oil on Canvas, 91x91cm, 2024
사람은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어려움을 겪어내며 단단해진다. 물론 단단해진다는 것은 성장의 표식이지만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단단해지기만 하다면 독단과 고립이라는 장애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특별한 것은 이미 단단해져 본 사람이 가지는 유연한 태도다. 처음부터 유연하다면 부는 바람에 쉽게 휩쓸려 존재가 희미해진다. 그러나 중심을 먼저 잡고 바람을 맞는다면 휘청이지 않고 바람의 리듬을 탈 수 있다. 마치 코어를 단단히 잡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무용수처럼. 창을 열고 바람을 맞이한 푸른 꽃의 이미지에는 이렇게 단단해졌다 유연해지려는 사람의 태도가 엿보인다.
‘모든 여행은 여행자도 모르는 비밀의 목적지를 품고 있다.’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b.1878)의 문장을 떠올려 본다. 이야기의 끝에 주인공이 도달하는 곳은 언제나 처음의 계획과 다르다. 다만 이야기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것은 과정의 풍성함이다. 작가의 내면에서 꽃이 피고 지고 나무가 되어 자라는 동안 푸른 꽃의 형태는 계속해서 새롭게 변화한다. 목적지의 변경이 아니라 진짜 목적지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화면 속 식물들이 서로 기대고 바람에 흔들리며 그림자를 만드는 사이에 보다 넓은 품이 탄생한다.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어쩌면 과정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지연(미술비평)
People become strong when experiencing difficulties in a long journey of life. Of course, becoming strong is a sign of growth, but if they only continue to stay strong in one direction, they will inevitably face obstacles like dogma and isolation. Therefore, what is special is the flexible attitude of a person who has already become strong. If they are flexible from the beginning, they will be easily swept away by the blowing wind, which will cause their existence to fade. However, if they stay firm and face the wind, they can ride the rhythm of the wind without stumbling like a dancer who holds the core firmly and moves gracefully. The image of a blue flower that opened the window and faced the wind shows a person’s attitude to become flexible again after being this strong.
I recall the quote, “Every journey has a secret destination that even the traveler does not know.” by philosopher Martin Buber (b.1878). The protagonist’s destination at the end of a story always differs from the initial plan. However, it is the richness of the process that determines the completeness of the story. While flowers bloom and fall to grow into trees within the artist’s inner self, the shape of the blue flower continues to change anew. It is a process of discovering the true destination, not a change of destination. Wider arms are born while the plants on the screen lean on each other, shake in the wind, and create shadows. The destination to reach may exist in the process.
Kim Jiyeon (Art Critic)
CV
학력
홍익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석사 |
가천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양화과 학사 |
개인전
2023 | 나무가 되어,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
2020 | SHAPE OF BLUE,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
2017 | Irony, 아트랩반, 서울, 한국 |
그룹전
2024 |
The color Blue, 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한국 |
어떤 것은 변화에 의해 같음을 유지한다, 갤러리x2, 서울, 한국 | |
Melody Blue, 화이트스톤갤러리, 대만, 대만 |
|
2022 | Stories of Serenity, 한컬렉션, 런던, 영국 |
서화 2인전, 갤러리 서화, 서울, 한국 | |
‘김수수x이채 Duo Exhibition&Special Auction, K옥션, 서울, 한국 | |
2021 | Dear my blue, 오브제후드, 부산, 한국 |
2020 | SUB_TITLE,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
2016 | Romantic Things, 땡스북스 더 갤러리, 서울, 한국 |
Educations
Master of Art, Hongik University, Korea |
B.F.A in Oriental Painting, Gachon University, Korea |
Solo Exhibitions
2023 | Lignification, UARTSPACE, Seoul, Korea |
2020 | SHAPE OF BLUE, UARTSPACE, Seoul, Korea |
2017 | Blue Irony, Artlab_ban Gallery, Seoul, Korea |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24 | The color Blue, WHITESTONE, Seoul, Korea |
Flow, between change and steadiness’, GalleryX2, Seoul, Korea | |
Melody Blue, WHITESTONE, Taipei, Taiwan | |
2022 | Stories of Serenity, Han Collection, London, UK |
Seohwa Exhibition, Gallery Seohwa, Seoul, Korea | |
KimSouSou X LeeChae Duo Exhibition&Special Auction, K-Auction, Seoul, Korea | |
2021 | Dear my blue, Objecthood Gallery, Busan, Korea |
2020 | SUB_TITLE, UARTSPACE, Seoul, Korea |
2016 | Romantic Things, Thanksbooks The Gallery, Seoul,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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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Chae
Press